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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대구동산교회 창립 60주년 기념 성지순례기 (이용오 장로)
작성자 :  황성훈
조회 : 3841
작성일 :  2018-07-22 10:13
     
대구동산교회 창립 60주년 기념 성지순례기
                                       이용오 장로

1. 순례 일정 : 2013년 4월 22일 - 5월 3일 (11박 12일)
2. 순례단원 명단 : 임영태목사, 유은숙사모, 이용오장로, 원정원권사, 주영명집사,
                 박순자권사, 조기완집사, 김순엽권사, 김명애집사, 유애순집사,
                 이수자권사, 구계연권사, 한영화권사, 채옥선집사, 박옥순권사,
                 양점자집사, 이영숙집사, 성심교회 동참 9명
3. 순례 인솔자  : 미션투어 대표 권중칠장로 (경주성락교회)
4. 순례 1인당 경비 : 3,627,000 원
5. 감사의 글
 할렐루야! 창립 60주년 기념 성지순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특히 우리가 이번에 탐방한 성지 4개국은 하나님의 흔적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여러 해 전부터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싶은 염원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되어 무척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신앙은 이론과 연구가 아닌 사실과 체험, 간증이라고 했습니다. 역사(HISTORY)는 하나님 그 분(HIS)의 이야기(STORY)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실이고, 그분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성지 현장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보내신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신 그 자리에서 우리도 기도하고, 주님의 세례와 성찬, 제자를 부르신 갈릴리, 그리고 골고다 십자가의 현장, 빈 무덤, 감람산 승천의 자리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그리워했습니다. 또한 주님의 제자로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았던 주님의 제자들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우리도 주님의 신실한 제자로 살기를 결단했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6. 일정별 성지순례보고 : 터키/그리스/이집트/이스라엘 4개국

1) 1일차 4월 22일 (월)
 오후 4시 리무진 버스로 대구동산교회를 출발하여 오후 8시 55분에 인천국제공항에 집결하여 출국수속을 마치고, 터키항공편(TK091)으로 오후 11시 55분에 출발하였다. 기내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2) 2일차 4월 23일 (화)
 새벽 5시에 터키 이스탄불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터키 입국수속을 마치고 현지 가이드(이동환)을 만나 이스탄불 국내공항으로 이동하여 오전 7시에 출발, 8시 30분에 네브쉐히르 공항에 도착하였다. 버스를 타고 갑바도기아라는 곳으로 가서 30곳 이상의 석굴교회가 있는 괴뢰메 골짜기를 탐방하여 여러 암석교회와 비둘기집으로 가득한 바위인 우치사르 비둘기 계곡을 보았다. 갑바도기아는 터키 동남쪽에 있는 지역이고 관련 성경구절은 벧전 1;1-2, 행 2;8-13이며, 이 지역은 아주 특이한 지형과 모습으로 광대한 지역 전체가 회색의 암반지대로 되어 있으며, 괴뢰메 지역에는 원추형의 돌산이 수도 없이 많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동굴들이 1,000여 군데에 이르며, 겉으로 보기에는 돌산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이나 내부에 들어가면 넓은 공간을 갖추고 거주시설과 교회 등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내부에는 성화들이 많이 그려져 있고,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된 성화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다음은 이 갑바도기아 지역의 데린구유란 지하도시를 방문했다. 이 지하도시는 1963년에 발굴된 것으로 30여 개가 발굴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이 지하도시는 둘레가 30 km, 깊이가 120 m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인구는 약 20,000명 정도가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지하 1층과 2층에는 주거장소, 취사장, 곡식저장소, 저수조 등의 사용처가 있으며, 그 아래 지하로 내려가면서 곳곳에 십자가 형태를 띠고 있는 지하교회가 있었다. 이 십자가 형태의 지하교회에서 우리 순례단원 전원이 목사님 주재로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바로 이곳에서 초대교회 수난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숨어서 신앙을 지키며 3대에 걸쳐 약 200년 동안 예배를 드렸던 감동의 현장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로 인하여 우리까지 복음이 전하졌다는 감사함과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점심식사는 현지식으로 터키 케밥이란 음식을 시리즈로 나오는 것을 먹었으며 오후시간엔 이동거리가 먼 파묵깔레란 지역으로 버스를 타고 가면서 넓은 터키 체리밭과 목화밭을 차창으로 볼 수 있었다. 오후 6시 반쯤에 파묵깔레의 TRIPOLIS HOTEL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호텔 뷔페식으로 저녁을 먹고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3) 3일차 4월 24일 (수)
 호텔 조식 후 라오디게아 지역을 탐방하였다. 라오디게아(계 3;14-22)는 에베소에서 수리아에 이르는 대로변에 위치하여 교통 및 통상의 요충지 역할을 하였으며, 목화 재배와 금융업이 발달한 곳이며, 의약이 발달하여 의료도시로 유명했다고 한다. 교회가 일찍 세워져 기독교가 널리 퍼진 도시로 요한계시록의 7대 교회 중 하나 인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곳에 있었다.
 이어서 고대유적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를 방문했는데 이곳은 기원 후 3세기 버가모 왕에 의해서 도시가 세워졌다고 하며, “거룩한 도시”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 6만 정도의 문화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로 체육관, 원형극장, 성당, 집회광장(AGORA), 공중화장실(LATRINA) 등의 유적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일찍이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여 쉽게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하며, 비잔틴 시대에는 주교가 주재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주후 80년경에 사도 빌립이 이곳에서 순교를 당했고, 그곳에 십자가형 구조의 기념교회가 비잔틴 시대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춧돌과 몇몇 돌벽, 돌기둥이 남아 있음을 보았고, 최근 바로 곁에 사도 빌립의 무덤이 발견되어 발굴 중에 있었다. 히에라폴리스에서 동남쪽 1 km 쯤의 완만한 언덕 위에 있으며 오는 길옆에 인접해 있는 아름다운 빨간 꽃들이 기억에 남는다.
 북서쪽에 인접해 있는 파묵깔레(골 4;12-13)는 천연온천장으로 유명한 곳인데, 히에라폴리스의 깊은 지하 동굴에서 솟아나오는 온천수가 100 m가 넘는 언덕의 경사면을 따라 폭포수처럼 흘러내려서 이 온천수가 흘러내리는 지역을 파묵깔레라 부르며, 뜻은 “목화의 성”이라고 한다. 이곳의 온천수는 섭씨 35도의 미지근한 물로 심장병, 소화기 장애, 신경통에 좋다고 하며, 로마 황제의 목욕탕도 이곳에 위치했다고 한다. 우리 순례단원 모두도 흘러내리는 온천수로 족욕을 했다. 이곳 온천수에는 석회질이 포함되어 있어 온천수가 흘러내리는 동안 석회질이 침전되어 흘러내리는 언덕 암벽에 붙어 자연적으로 백색의 물결처럼 석회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며, 멀리서 보면 목화송이가 하얗게 피어난 것처럼 보여서 파묵깔레(목화의 성)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버스를 타고 빌라델비아 지역으로 가는 도중 차창 밖으로 포도나무가 아주 많이 보였다. 먼저 사데 교회 유적이 남아 있는 현재의 사르트(SART)라는 작은 마을로 갔다. 이곳은 주전 6세기경 리디안 왕국의 수도였으며, 이 왕국은 크로이수스 왕 때 전성기를 맞았으나, 주전 540년에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침입으로 함락되어 불타 없어졌고, 지금은 아데미 신전의 웅장한 기둥들이 남아 있고, 옆에 사데 교회 유적이 있는데 규모는 작았다. 이 사데 교회(계 3;1-6)는 처음에는 에베소 교회처럼 뜨겁게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흐지부지 죽어가는 교회가 됨으로써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유일하게 주님으로부터 책망만 받는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일부의 의인에 대해서는 흰 옷을 입게 하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듣기도 했다.
 다음으로 빌라델비아 교회(계 3;7-13)가 있었던 알레세이르(ALESHIR)란 곳을 방문했다. 이곳은 주전 2세기경 버가모의 왕 앗탈루스 2세가 도시를 건설했으며 교통의 요충지로 산업도시이다. 형인 유메네스에게 대한 형제 사랑의 표시로 도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필리아(사랑)와 델피아(형제)의 합성어라고 한다. 이 지역을 최초로 전도한 사람은 누가의 친척인 ‘누기오’로 전해지는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킨 교회라는 주님의 칭찬을 받았다. 로마시대에는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다른 도시보다 기독교가 번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마나 교회와 함께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듣지 않은 교회로서, 교회는 미약하여 성도의 수는 적고 부요하지 못했으나 복음에는 항상 충성스러웠고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음으로 주님으로부터 크게 인정받은 교회가 되었다. 유적으로는 AD 6세기 비잔틴시대에 건축된 사도요한 교회가 높이 15 m 정도의 육중한 3개의 사각형 기둥을 남기고 있는데, 지어질 당시의 웅장했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그 다음 방문지는 두아디라 교회(계 2;18-29)가 있는 악히사르(AKHISAR)로, 인구 6만 명의 소읍으로 변하였다. 두아디라(THYADIRA)는 신약시대부터 불려진 도시로 산업과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이곳 사람들은 남신과 여신을 섬기는 악습이 있었고 우상숭배가 심했으며 이들은 제사 의식에 참가한 후에 그 음식과 술을 먹고 여사제들과 음행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초대교회 당시의 성도들도 거짓 선지자에게 속아 일부 이러한 행위에 동참해 주님으로부터 심한 책망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요한계시록 2;20에는 ‘여자 이세벨’이 등장하는데 이세벨은 음행과 우상숭배의 유혹과 동의어로 이해되고 있다. 현재 두아디라 교회는 시가지 가운데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를 보고 이곳 터키가 이슬람국가이고 기독교 유적을 방치하고 있음을 보게 되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다음 행선지인 이즈밀 ‘폴리갑기념 교회’는 교회 사정에 따라 입장이 불가하여 방문을 포기하고 쿠사다시란 도시로 가서 TATLISES 호텔에 도착하여 석식을 하고 휴식 후 취침하였다.

4) 4일차 4월 25일(목)
 아침 식사 후 버스로 누가의 묘소를 지나 에베소로 이동하였다. 에베소(EPHESUS)는 성경(계 2;1-7, 행 19;1-2, 행 19;8-10)에 자주 등장하는데, 로마 제국 2대 도시로, 25만의 인구의 큰 도시였다. 도시 중앙의 큰 마차도로 좌우에 시청, 헬스장, 공중화장실, 목욕탕, 부유촌과 빈민촌이 좌우로 나누어져 있었고, 2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 작지 않은 돌들로 만들어진 마차도로 아래 하수도가 형성되어 있고 그 위를 복개도로로 만들어져 있어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술이 대단함을 가늠할 수 있게 했다. 약 300 m 아래로 에베소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셀수스 도서관과 마제우스 문의 유적을 관람하고 사진촬영도 많이 했다. 또한 기독교도들을 박해한 장소인 원형극장에서 우리 순례단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찬송가를 합창하여 오신 많은 관광객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사도 바울은 주후 50년대에 아르테미스 여신의 도시인 에베소를 두 번 방문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바울은 이 에베소에서 거의 3년 가까이 머물면서 복음을 전파함으로, 인근 아시아의 골로새, 히에라볼리, 그리고 소아시아 7대 교회가 세워지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이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그리고 영적 아들인 디모데의 동역자로서의 협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곳 에베소는 초대교회 당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모시고 와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성모 마리아의 집’이 남아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에게 요한을 가르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가르켜 “보라 네 어머니이다”(요 19;26-27)라고 하신 것을 받들어 요한이 마리아를 봉양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 우리는 사도요한기념 교회를 방문했다. 사도요한기념 교회는 사도요한 무덤에 지어진 교회로 알려져 있는데, 사도요한은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기 직전에 에베소로 와서 에베소교회의 초대 감독이 되었다고 하며,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에 의해 밧모 섬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으며, 이후에도 수 없이 많은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주후 100년경에 90세가 넘은 나이로 에베소에서 평안히 숨을 거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요한의 무덤은 아야술룩 언덕의 중앙 기슭에 있는데, 이 무덤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주후 6세기경에 로마의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 웅장한 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다. 교회당의 크기는 길이 130 m, 넓이가 40 m에 이르는 큰 교회로 십자가 형태로 건축이 되었다고 한다. 사도 요한의 무덤은 교회의 중앙에 위치한 마루 바로 아래 방에 안치되었다고 하며, 소아시아 7대 교회 중의 하나인 에베소 교회는 이 요한기념 교회로 보는 학설이 가장 설득력을 받고 있다.
 이제 터키에서 마지막 순례를 마치고 체스메 항구로 이동하여 출국수속을 하고 오후 5시에 배를 타고 푸른 에게 해를 지나 그리스의 히오스 섬에 오후 6시에 도착했다. 히오스 섬에서 중국 음식점을 하는 대구 출신의 한국 여자 안내원을 따라 모처럼 한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그리스 본토 피레우스 항으로 가는 야간 크루즈 FERRY의 출발시간을 맞추기 위해 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 에게 해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둥근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넓은 식당 밖 정원에서 김명애집사(총무)의 스포츠 댄스 및 걷기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오후 10시 30분에 야간 크루즈 배를 탔는데 4인 1실로 조금 좁았지만 화장실과 샤워 시설도 있어 편안하게 씻고 취침할 수 있어 피곤한 몸을 풀 수 있었다.

5) 5일차 4월 26일(금)
 오전 7시에 그리스 피레우스 항에 도착하여 준비된 버스를 타고 한국인 여자 안내원을 만났고 버스에서 김밥으로 식사를 한 후, 옛 고린도 유적지로 이동하면서 그리스 및 아테네와 고린도의 역사적 설명을 들었다.
- 사도바울 교회 : 고린도 유적지로 가기 전 고린도 마을에 있는 교회인데 왼쪽은 베드로, 오른쪽은 사도바울의 모자이크 그림이 있고 대리석으로 고린도전서 13장이 기록되어 있었다. 잠시 사진 촬영을 하고 고린도 유적지로 향했다.
- 고린도 : 행 18;1-10, 롬 16;3
 고린도는 아테네에서 80 km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경에 나오는 고린도는 주후 1858년의 지진으로 폐허로 변하여 유적만 남아 있고, 현대 고린도는 그 후에 재건된 도시이다. 고린도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번창하였다. 고린도는 성적으로도 타락하여 비너스의 신전이 세워져 있었으며, 그곳에 무려 1,000명 이상의 무녀가 거주함으로써 매춘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도바울은 아테네를 떠나서 혼자 고린도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후에 마케도니아에서 온 실라, 디모데와 합류하였다. 바울은 고린도에 2년 가까이 머물렀으며 고린도 교회의 기초를 세웠다. 고린도전후서는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에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쓴 서신이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 때에도 고린도에 잠시 들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주후 57년경에는 이곳에서 로마서를 썼으며, 고린도의 동항(EAST)이었던 갠그리아에 살던 여 집사 뵈뵈를 통하여 로마로 보내졌다고 한다. 고대 고린도의 유적으로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끌고 갔던 재판 자리인 비마(BEMA, 재판석), 회당의 돌기둥, 폐허가 된 신전들, 강당, 공중목욕탕, 우물, 체육관 등이 있고, 박물관 내에는 그 당시의 정교한 질그릇, 도자기, 대리석 상, 젊을 때의 네로 황제의 조각상도 있었다. 고린도 유적지를 돌아보고 버스로 오는 길에 우리 순례단은 아이스케익으로 더위와 피로를 잠시 달랬다.
 고린도는 항구도시가 아니었으나 필로폰네소스 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고, 두 바다를 잇는 서항(레기움)과 동항(겐그리아)의 두 항구를 관할하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이 아테네를 압도할 만큼 호화스러웠으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번창 하였다고 한다. 고린도를 떠나는 길에 이 겐그리아 항 해변 길에서 고대 겐그리아 교회를 찾았는데, 이곳도 지진과 지각변동으로 해변에 깔아 앉아 있는 교회 흔적만 볼 수 있었고, 여기가 사도바울이 머리를 깍은 곳으로 전해진다. 이어서 아테네를 향하여 아크로폴리스 순례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 아테네는 현재 그리스의 수도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중 가장 번창했던 도시국가였다. 아테네란 이름은 고대 그리스 여신 중에서 아테나(ATHENA)라는 지혜, 학예, 전쟁의 여신을 도시의 수호신으로 삼은 데서 유래했다. 성경에는 아덴으로 기록되어 있다.(행 17;16-23). 아크로폴리스란 도시국가 폴리스에 있는 높은 언덕을 가리키는 곳으로, 높다는 뜻의 그리스어 아크로에서 유래되었다. 대부분 폴리스 중심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에는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웠다. 흔히 아크로폴리스라고 하면 이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아테네의 것을 말한다. 아크로폴리스 높은 언덕에 파르테논 신전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문화유산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신전의 웅장한 돌기둥들이며 크고 놀라운 건축물들을 볼 때 고대 그리스 문명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가를 짐작하게 했다. 아크로폴리스 높은 언덕 위에서는 인구 500만의 큰 도시인 아테네 시가지를 다 볼 수 있는 전망이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페르시아를 이긴 기념으로 BC 490년에 당시 수학자 피타고라스의 수학을 기초로 하여 건축가 익토니아누스 갈리우스의 주도 하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하여 10년 만에 지어졌다고 하며, 파르테논 신전의 유적물들은 영국으로 많이 반출되었다고 한다.
 아레오바고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남서쪽 밑에 있는 낮은 돌로 만든 봉우리 언덕인데, 이곳은 법정으로 이용되어서 산 위에서 피고와 원고를 중앙에 세우고 재판관이 심문, 판결하는 곳이었다. 사도바울은 이곳에 붙들려가서 변론하며 복음을 강력하게 전파하였다고 한다. 사도바울은 2차 전도여행 기간 중 아테네를 방문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여러 신을 섬기고 우상숭배가 아주 심한 상태였는데, 사도바울은 이곳에서 매일같이 회당과 아고라(시장 또는 사람들이 모여 정치이야기를 하는 곳)에 찾아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였고, 그 후에 아테네 사람들이 많이 개종되어 여러 종교를 내려놓고 예수님을 받아들였다고 한다(행 16;32). 아레오바고 법정으로 불렸던 아레오바고 언덕을 내려옴으로써 그리스 성지순례를 마치고 버스로 아테네 시내로 들어와 현지 레스토랑에서 현지식 빵과 돼지고기 꼬치구이 및 스파게티가 나오는 그리스 식사를 맛있게 하고, 교통이 복잡한 아테네 시가를 통과하여 아테네 국제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아테네공항에서 오후 5시에 출발하여 2시간의 비행 후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한국인 목사 안내원의 안내로 그랜드 피라미드 호텔로 이동하여 투숙하였다.

6) 6일차 4월 27일(토)
 호텔 조식 후 아침 7시에 순례 3번째 나라인 이집트 순례를 위해 버스를 타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카이로 서남쪽 기자 지구로 향했다. 피라미드는 죽은 왕들의 영생을 기원하며 지은 무덤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로 왕(파라오)들에 대한 인간 숭배와 그들의 우상숭배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 죽어서도 영화를 누리려는 인간의 욕심을 볼 수 있었다. 피라미드 하나를 건축하는데 연 인원 10만 명이 20년 이상 결려 지었고, 돌의 개수는 230만 개였으며, 1개 돌의 무게는 2.5톤이나 되었다고 한다. 피라미드의 네 귀퉁이는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고 돌 하나하나를 깎고 쌓아서 계단식으로 건축하였다.
 스핑크스는 피라미드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으로 거대한 석상으로 몸통은 사자를 닮았고, 얼굴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어 인간의 지혜로움과 사자의 용맹스러움을 표현했다. 이 거대한 피라미드는 지어진 연대가 주전 2680년경으로 파악되고 있고, 아브라함이 주전 2100년경에 애굽으로 이주하였다고 하니 이스라엘 노예가 이 피라미드 건축에 동원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기자 지구에 들어섰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가장 큰 피라미드는 쿠퍼 왕의 피라미드로 그 크기는 밑면이 230 m, 높이 146 m 정도라고 한다. 우리 순례단은 이 거대한 피라미드 가까이 또 떨어져서 사진도 찍고 10 m 높이의 입구에서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또한 스핑크스는 기자의 두 번째 피라미드 옆을 200-300 m 정도 내려가 있는데, 주전 2650년에 지어졌다고 하며, 크기는 길이가 70 m, 높이가 20 m, 얼굴 너비가 4 m 되는 거대한 석상이 있었다. 죽은 후에 내세를 생각해서 수십만의 산 사람들이 동원되어 죽어가며 이 거대한 무덤을 만들고, 물건들을 자신의 미이라와 함께 넣어 살아나기를 기대했던 이집트의 왕들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불쌍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현지 안내자의 재촉에 따라 황량한 모래바람이 이는 피라미드 지역을 뒤로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여정을 따라 버스를 타고 시나이 반도로 향하였다. 우리 순례단은 먼저 수에즈 운하(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인공 수로)를 건너 버스를 정차하고 수에즈 운하 다리 위에서 마침 홍해로 가는 커다란 배가 상당히 아래쪽 물길을 따라 가는 것을 바라보고 사진도 찍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여정은 나일 삼각주의 중간 지점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고센 땅을 출발하여 비돔, 숙곳(SUCCOTH), 홍해를 건너 마라, 엘림, 르비딤 광야를 지나 시내 산에 이르게 된다.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의 규모는 장정만 60만 명으로 4인 가족으로 할 때 약 24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이들이 10열로 행진했다면 앞뒤 간격을 1 m로 해도 약 240 km에 이르는 엄청난 이동길이 된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황막한 시나이 사막 지역을 지날 때 필요한 물과 식량은 엄청났으리라 생각되고, 또 낮에는 40도가 넘는 더위와, 밤에는 추워지는 사막 광야의 악조건을 과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이동하는 것은 가능 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출 13;18-22). 성경말씀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 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추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수르 광야 길을 인도하셨고, 아침에는 만나, 저녁에는 메추라기로 식량을 삼게 하신 것이 분명하였다(출 16;12-16).
수에즈 운하 지점을 떠나 약 54 km 떨어진 마라의 샘에 도착하여 사막 가운데 종려나무 숲과 지금도 물이 나오는 샘물가가 벽돌로 쌓여진 마라의 샘을 보았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마라 샘에 도착했을 때 이 샘물을 보고 좋아했으나 몰이 써서 먹을 수가 없어서 이 샘을 “마라”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를 샘물에 던지니 샘물이 달아졌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들은 열기가 대단한 사막 모래 위에서 자라고 있는 종려나무들과 멀지 않게 바라보이는 홍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서, 시원한 순례 버스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수르 광야를 달렸다. 점심식사는 버스에서 하고, 시나이 광야를 지날 때는 이집트 경찰의 무장한 장갑차의 선도 호위를 받았는데, 이것은 이 지역을 달리는 순례 버스가 무장 베드윈 족에 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이집트 당국의 배려라고 했다. 순례 버스는 오후 내내 황량한 나무숲이라고는 없는 회갈색 시나이 광야 사막 길을 달리면서 멀리 높은 바란 광야도 차에서 볼 수 있었다. 시내 산에 가까이 오자 풀 한 포기 없는 산들로 둘려진 계곡 길을 한참 달려 시내 산기슭인 숙소 케트린 플라자 호텔에 오후 늦게 도착하여 저녁 10시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7) 7일차 4월 28일(일)
 오늘은 시내 산 정상을 깜깜한 새벽 2시에 올라가는 스케쥴이다. 시내산은 호렙 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높이가 2,285 m의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카이로에서 약 415 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시내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가시 덤풀 또는 뾰죽뾰죽한 땅이라는 뜻이며, 호렙은 건조한 곳이란 뜻이다. 시내 산 등정은 올라갈 때 3-4시간, 내려올 때 2-3시간이 걸리는 다소 힘든 등정길이기 때문에 우리 순례단도 중간쯤까지 올라갈 때 낙타를 타기도 했다. 정상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이며 모세기념 교회가 세워져 있다. 우리 순례단은 정상에서 검붉은 산 가운데서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 광경 속에서 기도와 찬양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감동을 가졌다. 내려오는 길목 시내 산기슭에 있는 성케더린 수도원을 탐방했다. 성케더린 수도원은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사이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졌는데, 지금도 그 떨기나무가 보존되어 있고, 이 수도원은 현재 그리스 정교회 소속인데 비잔틴 양식의 수도원 건물을 가운데 두고 성벽으로 둘러싸여져 베두윈 족들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건축하여 당시의 원형이 1500년의 세월 동안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수도원 안은 사정에 의해서 들어가지 못했으나 이 수도원 안의 성물과 성화들은 모두가 역사의 증거물이 아닌 것이 없고 특히 도서관은 귀중한 성경 희귀본들이 많이 보관하고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고고학적 가치와 희소성이 있는 자료들을 가지고 있는 보고라고 한다.  
 시내 산 등정을 마친 순례단은 캐더린 플라자호텔(해발 1200 m)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이스라엘로 가기 위해 이집트 국경도시 타바에서 출국수속을 한 후, 이어서 이스라엘 입국수속을 다소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마쳤다. 이스라엘에서는 현지 안내자 조형오목사를 만나 안내를 받으면서 이스라엘 국경도시 에이랏으로 향했다. 에이랏은 홍해 변 끝자락에 위치한 국경도시로 성경에서는 에시온 게벨 지역이다. 이 에시온 게벨 지역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서 1년여를 머물다가 시내 광야를 거처 이곳에 도착하였고, 북쪽 바란 광야를 거쳐서 가데스바네아란 곳에서 가나안땅 여리고에 정탐꾼을 보낸 후 다시 신 광야를 헤메이다, 이 곳 에시온 게벨로 오게 된 곳이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사해 동쪽, 지금의 요르단의 에돔, 모압, 디본, 헤스본을 거쳐 여리고(JERICHO)로 북상하여 들어갔다고 성경은 설명한다(출 14;2). 우리들은 이 에이랏에서 이스라엘 전용버스를 타고 여리고를 향하여 북상하면서 오른쪽(동쪽)은 사해, 왼쪽은 이스라엘 신 광야의 돌산들을 차 안에서 보면서 안내자로부터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에 관하여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여정 중에 왼쪽 돌산 언덕 위에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으로 변한 돌기둥을 차창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오후 늦게 서야 여리고의 인터콘티넨탈 여리고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은 새벽 2시부터 시내 산 등정,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 이동 등 바쁜 일정으로 인해 주일 예배를 오후 8시에 호텔 3층 회의실에서 임영태목사의 인도로 드리게 되었다. 이용오장로의 기도와 임영태목사의 설교와 순례단의 찬양으로 은혜롭게 예배를 마친 후, 동산교회 순례단만 참석하여 간단한 소감과 간증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8) 8일차 4월 29일(월)
 그동안 3개국 순례길에서 묵은 어떤 호텔보다 좋은 5성급인 인터콘티넨탈 여리고 호텔에서의 편안한 밤을 보낸 후 본격적인 이스라엘 순례를 시작하게 되었다. 먼저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삭개오의 뽕나무를 탐방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점령한 도시로,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인이 살았으나 지금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자치구이다. 여리고는 물이 많은 곳인데 물의 질은 좋지 않아 엘리사가 소금을 넣어서 좋은 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삭개오 뽕나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큰 나무였다. 뽕나무는 원래 들무화과 나무가 정확한 이름이라고 하는데 우리들은 이 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였다. 여리고는 예루살렘 동쪽으로 35 km 떨어진 요단계곡의 서쪽에 위치하고 BC 14세기경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당한 곳으로, 예수님이 세리였던 삭개오를 만난 곳이며(눅 19;1),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잇는 비탈길을 배경으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다(눅 10;30).
 다음 행선지로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던 장소로 알려진 시험 산을 방문했다. 시험산은 여리고의 뒤쪽에 위치한 카란텔 산으로 추정하고 있고, AD 6세기경에 예수님이 머문 곳으로 알려진 산의 동쪽 동굴에 교회가 세워졌고, AD 13세기에 폐허가 되었으나 1874년 희랍정교회가 이곳에 수도원을 지었다. 이어서 엘리사의 샘물을 방문하였는데 지금은 이 물이 여리고시에 공급되고 있다.
 오후가 되면 복잡할 것 같아서 사해에서 수영체험을 하기 위해 서둘러 사해로 가는 길에 차창가로 허물어져 흔적만 남은 여리고성을 볼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5 km 가면 사해(염해, DEAD SEA/SALT SEA)의 북단에 도착할 수 있다. 사해의 수면은 지중해보다 398 m나 낮은, 지구에서 가장 저지대의 땅이다. 가장 깊은 수심은 400 m이며, 길이는 78 km, 폭은 넓은 부분이 18 km이다. 사해는 히브리어로 “소금바다”라는 뜻의 ‘얌 하멜라흐’이다.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사해주변에서 소금을 캤다. 사해는 연중 섭씨 40도로 매우 덥다. 요단강과 사해 주위에 있는 와디에서 매일 500만 톤의 물이 사해로 유입되지만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없다. 그런데도 수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기온이 워낙 높아서 물이 계속 증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해의 물은 여러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금 농도가 약 30%(바다 물 소금 농도의 7-10배)나 되어 물에 들어가면 사람도 뜨게 된다. 우리 순례단도 수영복을 입고 이것을 직접 체험하였고, 사해 바닥에서 나오는 아주 곱고 검은 진흙이 피부에 좋다고 해서 얼굴과 몸에 바르는 머드팩도 하였는데 아마도 광물질이 많고 소금, 그리고 동식물성 유기물이 합해져서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음 방문지인 쿰란(QUMRAN)은 사해 북단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5-6 km 내려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사해문서’가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쿰란에는 유대교 3대 종파 중 하나인 에세네파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는데, 그들은 자신들만이 선민이라고 믿고, 종말에 대비하면서 철저한 금욕생활을 했다고 한다. ‘사해문서’는 BC 250년에서 AD 68년 사이에 이들 에세네파가 필사한 두루마리 문서로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구약성서 사본이다. 이 사본이 발견된 경위는 이렇다. 1947년 2월 양을 치던 베두윈 소년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메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동굴을 발견하였다. 소년은 양을 찾기 위해 동굴 속으로 돌을 던졌는데 뜻밖에도 항아리가 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소년을 동굴 안으로 들어가 질그릇에 담겨 있는 수많은 두루마리를 발견하였다. 본격적인 발굴은 1947-56년에 이루어졌는데, 이 사본들은 2,000년 이상 썩거나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었는데, 그 이유는 사해 주변의 건조하고 소금기가 많은 기후적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순례단이 바라 본 것은 언덕이라기보다는 돌산으로 보이는 꼭대기 부위에 7개의 동굴 구멍을 볼 수 있었고, 이 공동체 사람들은 동굴을 파고 살았고, 공동체 책임자의 방, 성경을 기록하던 방, 정결례를 위한 목욕탕, 항아리를 빚던 곳, 집회소, 공동 식당, 물 저장소, 마구간 등의 공동체 생활을 위한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요단강이었다. 요단강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40년 만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간 강으로 북쪽 헬몬 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 호수를 채우고 또 흘러 내려가 사해에 이르는, 길이 220 km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강이다. 성경의 많은 곳에서 등장하며, 이 강을 중심으로 동편은 요르단, 서편은 이스라엘로 나뉘게 된다. 우리가 본 요단강은 그 폭이 넓지 않고 깊이도 그리 깊지 않았으며, 주위에 종려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물은 맑지 않고 황색이었지만 물속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어서 우리들은 북쪽 갈릴리로 향하였고, 먼저 므깃도(아마겟돈, 계 16;16)을 방문하였다. 므깃도(지도상 MEGIDDO)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차지하려는 전투가 많이 벌어졌던 곳이다. 솔로몬은 므깃도를 행정 중심지로 만들었으나(왕상 9;15), BC 923년경 애굽의 시삭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후 아합 왕이 재건하였으며 요시아 왕은 북진하는 애굽 군대를 맞아 싸우다가 이곳에서 전사하기도 하였다(BC 609년).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마겟돈(AMAGEDDON)”이라는 말은 ‘므깃도 산(HAR MEGIDDO)’이라는 히브리어를 희랍어로 옮긴 말이다. 므깃도는 ‘솔로몬의 마병장’이 있었다.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개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장소가 발견되었는데, 솔로몬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곳으로, 주전 3000년부터 주전 4세기까지 무려 24번이나 점령과 파괴가 반복되는 전쟁터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요한계시록 16;16에서 인류 최후의 전쟁이 있을 곳으로 묘사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므깃도를 방문한 우리 순례단은 다소 높이 올라가는 언덕을 따라 가면서 솔로몬 당시의 성터와 궁전터를 볼 수 있었고, 산 위에 자리 잡은 요새로서의 모습을 보았고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서북쪽 멀리 갈멜 산에서 동남쪽으로 펼쳐지는 넓은 이스르엘 평야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이 평야를 건너 동쪽으로 멀리 다볼 산(TAVOR), 모래 산(MOLE), 길보아 산(GILBOA)을 가리키며 안내자는 우리들에게 이곳들의 지명을 외우라고 한 기억이 난다. 우리는 내려오면서 아합 왕 때 만들어진 수로를 볼 수 있었는데, 이 수로는 므깃도 성 내부의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성 밖 지하 10 m에 있는 샘까지 이르는 지하수로를 건설함으로써 식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며, 우리는 이 수로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일정 마지막 장소는 갈릴리 호수였다. 우리 순례단은 호수 서쪽 티베리아스 쪽 항구에서 유람선을 승선하여 갈릴리호수 선상에서 임영태목사의 인도와 말씀, 주영명집사의 대표기도, 그리고 그 당시 예수님과 제자들을 생각하며 감격적인 찬양으로 선상예배를 드렸다. 원래 갈릴리호수는 오전에는 잔잔하고 오후에는 풍랑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당일에는 그저 시원한 바람 정도로 느껴졌고, 서쪽 티베리아스 쪽으로 해지기 전의 오후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순례단 전원이 찬송과 함께 춤을 추며 즐거운 뱃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예수님은 갈릴리호수를 중심으로 하여 공생애를 시작하셨는데, 예수님의 제자 중에 7명이 이곳 갈릴리 출신이다. 예수님은 고기를 잡던 어부들인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불러 제자를 삼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곳 갈릴리호수가에서, 때론 갈릴리 바다에서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이 행하신 33번의 기적 가운데 10번이 갈릴리호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감동과 은혜로 오래 기억될 이곳 갈릴리호수 순례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였다.

9) 9일차 4월 30일(화)
 호텔에서 일찍 아침 식사를 하고 갈릴리 지방에 있는 가나혼인잔치기념 교회를 방문하였다. 가나는 예수님이 공생애 초기에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킨 곳이다(요 2;1-11). 또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곳이기도 하다(요 4;46-54). 1879년 프란체스코 교회에서 혼인잔치가 열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터를 매입하고, 1844년에 기념교회를 건축하였다. 이 교회의 지하에는 옛날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 문구가 쓰여 있고, 예수님 당시 사용되었던 돌 항아리도 보관되어 있어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팔복 교회는 산상수훈(마 5;3-10)의 첫 번째인 팔복을 가르치셨다고 전해지는 곳에 있다. 갈릴리 북쪽 호반에 있으며 호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아주 멋진 곳이었다. 이 산 위에 가톨릭교회 수녀원 소속인 팔복 교회가 있다. 여덟 가지 복을 상징해 팔각형 구조로 건축된 아름다운 교회였다. 이곳을 나와 다음 행선지로 옮기는 버스에서 출발하기 전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10절까지 산상수훈을 일행 중 한 분이 자구 한 자 틀림없이 암송하여 감동을 나누었다.
 다음 방문지인 가버나움은 예수님 당시의 가버나움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일반적으로 “텔흠(TELL HUM)”이란 곳을 가버나움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가장 유명한 유적은 고대 회당이다. 회당 건물은 AD 2-3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전도할 때 사용했던 자리에 로마의 백부장이 세운 회당일 것으로 추측된다. 건물 기둥에 “알패오와 세베데의 아들과 요한의 아들이 이 기둥을 세우노니 그 위에 축복이 있으라”는 비명이 발견되었다. 또한 회당 문에 있는 상인방(上引榜) 옆에서 만나를 새긴 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이 자리에서 설교하실 때 항아리를 바라보며 떡에 관한 설교를 하셨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요6;48-59).
 다음 방문지는 타브가 오병이어기적기념 교회(마14;17-21)이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곳이 갈릴리 지역임은 분명하지만 정확한 장소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1930년대 초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갈릴리호수 북서편에 있는 타브가를 발굴했으며, 여기서 AD 400년에 건축된 교회의 유적을 찾아냈다. 이 교회는 남북으로 56 m, 동서로 약 30 m 규모로 사방 1 cm 크기의 자연석 모자이크로 바닥을 장식하였다. 이 중 오병이어의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는데, 1936년 독일 가톨릭교회가 이 유적지 위에 교회를 건축하고 오병이어 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82년에 세운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다음으로 베드로수위권 교회(요21;1-12)를 방문하였다. 오병이어기적기념 교회 바로 인근에 위치하며 이곳에 세워진 베드로수위권 교회라는 명칭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양을 부탁하신 것을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세 번째로 갈릴리호수가에 나타나신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본래의 고기잡이 생업으로 복귀한 제자들에게 새벽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밤새도록 허탕을 친 제자들에게 그물을 오른편으로 던져 많은 고기를 잡도록 하시고, 그들에게 지금까지의 경험과 경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일깨우셨다.
 요한복음 21;1-17까지에 또한 제자들과 더불어 떡과 고기로 식사를 하신 후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도 두 번 더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라고 하셨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베드로가 제자 중에 수제자가 되고 으뜸가는 위치를 받았다고 해서 이 교회의 이름이 베드로수위권 교회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베드로가 초대 교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현지를 방문한 우리 순례단에게 보이는 것은 갈릴리호수가에 지어진 검은 빛의 현무암으로 된 자그마한 교회였다. 교회 내부에 들어가 보니 당시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를 하였다는 식탁 바위가 교회 제단 앞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비잔틴 시대 4세기 후반에 세워진 교회 터 위에 1933년에 건축한 교회라고 한다. 이곳을 찾은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치라” 하는 음성을 듣는 듯 하여 우리 모두에게 감동과 은혜가 되었다.
 다음 방문지는 나사렛이었다. 나사렛은 갈릴리호수가 티베리아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34 km 떨어져 있고, 예루살렘에서는 북쪽으로 약 135 km 떨어진 도시로 해발 380 m 정도의 언덕 위에 있고, 주위에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아주 오래된 도시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까지 성장하고, 생활하신 예수님의 고향이다. 누가복음 1장 26-31절에 보면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을 예고하고 있는데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이 말씀에 근거하여 마리아가 예수 수태의 사실을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고지 받은 마리아의 집터 위에 마리아수태고지 교회가 세워졌다. 마리아수태고지 교회는 주후 4세기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처음 세워진 이래 파괴와 복구를 다섯 차례나 반복하였는데, 현재의 교회는 1969년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교회건축가로 알려진 이탈리아인 무지오에 의해 설계되어 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회의 크기가 폭 30 m, 길이 70 m나  되어 성지에 있는 교회 중에 가장 큰 교회라고 한다. 교회 내부는 안쪽 바닥이 온통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어 한층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고, 또 교회 내부에는 마리아가 살았던 집터로 알려진 수태고지 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의 벽에는 수채화로 그려진 낙원을 묘사한 그림이 있으며 꽃과 승리의 화환이 그려져 있었다. 또한 이 교회를 유명하게 만들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세계 각지에서 보내 온 성모 마리아와 성자 예수의 모습을 주제로 한 성화들이 교회의 넓은 벽면에 가득 걸려있어서 인데, 우리나라에서 보내온 그림도 걸려 있다. 이남규교수의 작품으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마리아가 색동옷을 입은 어린 예수를 안고 서 있는 모습으로 아주 인상적인 그림 중의 하나였다.
 마리아수태고지 교회 바로 옆에 성요셉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는 예수님이 소년 시절에 목수 일을 배우며 살았던 요셉의 집터 위에 세워졌다고 하며, 이 교회 내벽에는 어린 예수가 목수 일을 배우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지하실에는 사방 2 m 크기의 세례 받은 곳이 있다고 하나 우리 순례단은 내부엔 들어가 보지 못했다. 교회의 크기도 마리아수태고지 교회보다 훨씬 작았다.
 다음으로 우리들은 지중해 연안으로 향하여 가이사랴 항구(행 10)를 방문하였다. 가이사랴는 갈멜 산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20 km 정도 떨어진 지중해안의 도시로 헤롯 왕에 의해서 주전 20년에 중건되어 10년 만에 세워진 항구도시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고 유적만이 존재한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헤롯 왕에게 이 지역을 선사함으로써 헤롯 왕은 로마 황제 가이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 지역에 항구와 도시를 건설한 후에 이 항구와 도시의 이름을 가이사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도시는 당시에 시장과 경기장, 원형극장, 로마식 공중목욕탕 등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 대도시로 건축되었으며, 유대지방의 행정수도로 정치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의 관저와 행정본부가 이곳에 위치함으로써 큰 도시로 발전하였는데 로마시대 이후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에도 계속 발전하였으나, 이슬람 군대에 완전 패망하여 역사 속의 도시로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당시의 유적들이 발굴이 되어 관광객을 맞고 있으며, 지중해를 바라보는 바닷가 모래밭의 경치가 좋았고, 기둥과 기초만 남은 헤롯 왕의 별장, 바다를 바라보는 야외 원형극장, 마차경기장, 갈멜 산에서부터 물을 끌어들였던 수로가 바닷가에 줄을 지어 서 있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로마 백부장인 고넬료는 베드로를 모셔오게 하여 고넬료와 같이 한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받게 한 사건이 있는데, 이것은 베드로가 유대인이 아닌 로마 사람에게도 세례를 줌으로써 기독교가 유대인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여 범세계적으로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 가이사랴는 사도바울이 전도 여행 중에 여러 번 들른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일곱 집사 중 하나였던 빌립의 집에 머물기도 했다고 사도행전 21장 8절에 기록하고 있다. 또한 바울이 로마에 수감되기 전 이곳 가이사랴 감옥에서 약 2년 간 수감되어 있다가 로마로 압송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들은 가이사랴 항 해변 노상 카페에서 푸른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며 마침 첫 손자를 얻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수자권사님이 베푼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 방문지를 위해 우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이동하여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9 km 지점, 해발 770 m 언덕 위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베들레헴은 ‘집’이란 뜻의 벧트(Beit)와 빵이란 뜻의 레헴(Lehem)이 합해져서 “빵집”이란 뜻을 갖고 있다. 아랍어로는 ‘푸줏간’으로 이 지역이 비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베들레헴은 성경에 여러 차례 언급된다. 베들레헴 근처에서 라헬이 죽어 묻혔으며(창 35;19, 48;7), 사사기 19장에 나오는 레위인의 첩이 베들레헴 출신이다. 또한 룻기의 배경이 베들레헴이며, 특히 룻의 자손인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사무엘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았다.(삼상 16;1-13). BC 6세기 말에는 바벨론에서 귀환한 123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았으며 미가 선지자는 이 베들레헴에서 메세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미 5;2-5. 마 2;6, 요 7;42). 베들레헴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으로 유명하다. 예수님이 이곳에서 태어난 연유는 그 당시 로마 황제 가이사가 유대인들에게 호적을 정리하라는 명령에 따라, 만삭이 된 마리아와 요셉은 이곳 멀리 베들레헴으로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예수님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곳 베들레헴에서 우리들은 예수님탄생 교회, 선한목자들의 교회를 방문했고, 호텔(Manber Square Hotel)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 후에 취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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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일차 5월 1일(수)
 호텔 조식 후 오늘은 본격적인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다. 예루살렘은 지중해에서 동쪽으로 약 53 km, 사해에서 서쪽으로 약 23 km에 위치한 도시로 서 팔레스타인 중앙 능선의 산꼭대기를 지나는 주요 도로의 교차점에 있으며, 해발 78 m의 고원에 건설된 도시이다. ‘평화(Salem)의 기초(터전)’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이 예루살렘은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하여 살았다고 전해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현재 인구는 약 43만 명 정도이며, 유대교인이 약 30만 명, 이슬람교인이 약 10만 명, 나머지 2만 명 정도가 기독교인인데 거의 대부분이 동방정교회 소속이라고 한다.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고대 이스라엘 및 유다 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은 주전 1,000년경 다윗 왕이 이곳을 유대인의 도읍으로 정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화려한 신전을 건설한 이래, 유대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도시가 되고 있다. 또한 4,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중심지로 전 세계 인류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예루살렘의 뜻은 “평화의 도시”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50여 차례의 외침을 겪었고 20여 회에 걸쳐 이집트,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투르크 등에 의해 정복을 당했으며, 10여 차례에 걸쳐 도시 전체가 완전히 파괴되는 불운을 겪어 왔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던 모리아 산이 바로 이곳이고, 주님이 부활하셨고, 승천하신 곳이며,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거룩한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우리들은 맨 먼저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계곡 건너편에 있는 감람산을 방문했다. 감람산은 성전산보다 90 m 정도 높아서 정상에 서면 예루살렘 성안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감람산은 다윗 왕이 하나님께 경배(삼하 15;30-32) 하였으며, 솔로몬 왕의 산당(왕상 11;7-8)이 있던 곳이다. 감람산 기슭에는 유대인들의 무덤이 많았고, 예수님은 이 산을 자주 찾아와서 쉬시며(눅21;37), 묵상하셨으며,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 이 산을 넘어서 입성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체포를 당하셨고, 이곳에서 하늘로 승천하셨다. 이 감람산 꼭대기에 예수님승천 교회가 있는데 이 승천당이 있는 곳은 담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여져 있고 승천당 자체 건물 아래 부분은 팔각형의 건물로 되어 있는데, 여덟 방향 모두 아치형의 문이 만들어져 있으나 지금은 모두 돌 벽돌로 막혀 있고, 한 쪽 면만 작은 문이 만들어져 있다.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에는 예수님의 승천을 상징하여 지붕이 개방되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돔 형태로 덮여져 있다. 이것은 1187년 아랍의 살라딘 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에 이 건물의 천장을 막아 회교식 돔으로 만들고 회교사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건물 내부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밟아서 생겼다는 예수님의 족적이라고 전해지는 바위가 놓여 있다는데 방문객 줄이 길어서 우리 일행은 들어가지 못했다.
 이어서 내려오는 길에 주기도문 교회를 방문했다. 주기도문 교회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곳은 동굴로 알려져 있는데, 주기도문 교회 아래쪽에 주기도문 동굴예배소가 위치하고 있다. 주기도문 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4세기에 예루살렘의 감람산 정상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준 장소를 기념하여 그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에 의해 세워졌다. 그 후 주후 614년에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875년 프랑스에서 가톨릭의 카르멜파 수녀들을 위한 수녀원과 함께 건립한 것이다. 수녀원 건물 벽에는 한국어를 포함한 111개국의 언어로 기록된 세라믹판 주기도문이 벽에 장식되어 있었다. 한글판 주기도문은 가톨릭 부산교구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감람산 주기도문 교회에서 기드론 골짜기 쪽으로 비탈길을 조금 내려와서 특이한 형태의 교회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붕괴를 예언하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전해지는 예수님눈물 교회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에서 건져내려 했지만 이스라엘은 끝내 이를 거부했고(막 23;37), 그들 앞에 남아 있는 것은 멸망뿐이었다. 이를 알고 있었던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슬퍼하고 통곡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우신 기록은 성경에서 세 번 나오는데 나사로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요 11;35), 기도하시면서(히 5;7),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 우셨다. 이 예수님눈물 교회의 옆쪽에는 유대인들의 무덤이 많이 보이고, 교회 내에 들어가면 감람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이 교회는 감람산 정상에서 예루살렘 성을 향해 가파른 언덕 길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예루살렘 도시 전체를 잘 볼 수 있는 위치였다. 바로 앞 유대인들 무덤 넘어 가로로 이어지는 것이 기드론 계곡이며 왼쪽에는 흰놈 골짜기가 서쪽으로 이어지는데 그 끝자락에 시온 산의 마가의 다락방, 다윗왕의 가 무덤, 베드로통곡 교회들이 멀리 보였다. 정면으로 기드론 계곡 넘어 예루살렘 성, 황금돔으로 된 사원, 그 뒤에 파란 돔형 지붕을 가진 성묘교회가 보였다. 예수님눈물 교회 돔지붕의 네 모퉁이에는 눈물 모양의 뾰족한 돌이 하늘을 향해 달려 있는 조그마한 사방 10 m 정도 되는 작은 교회였고, 교회 내부에는 예루살렘 성을 향해 돔 형태의 창문이 나 있고, 이 창문에는 쇠창살로 무늬가 만들어져 창문 유리를 받치고 있는데 이 창문을 통해 보면 예루살렘 성이 유난히도 잘 보이고 또 성전 산의 황금사원도 잘 보인다고 한다. 이 쇠창살은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을 상징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며 이 교회는 1955년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바루찌라는 사람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이전에는 수도원이 있었다고 한다.
 감람산 정상에서 내려오던 길을 따라 기드론 골짜기를 향해 내려가면서 왼쪽으로 유대인 무덤들을 보고 거의 다 내려가서 만국 교회에 이르게 되었다.
만국 교회는 겟세마네 교회라고 불리는 교회인데, 열방 교회라고 하기도 한다. 예수님이 체포당하신 겟세마네 동산은 감람산의 서쪽 기슭에 있다. 동산이라고 해야 별로 크지 않으나 지금도 오래된 감람나무(올리브)가 있다. 그 중에는 예수님 당시부터 있었다는 2,000년이 넘은 나무도 있었다. 겟세마네 교회는 겟세마네 동산 옆에 있다. 이 교회는 “열방 교회(The church of all nations)”라고도 하고 또 만국 교회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겟세마네 교회가 파괴된 후에 1919년 이 교회를 다시 건축할 때 세계 각각의 모금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교회 지붕의 12개의 돔은 12명의 제자를 상징하며, 예배당 전면에 있는 4개의 큰 기둥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개의 복음서를 상징한다. 교회 내부에는 조명이 없이 항상 어둡게 되어 있는데, 이런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그 밤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이며, 눈물과 피의 자리요, 고통과 아픔의 자리요, 배신과 비극의 자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괴로운 모습을 보이시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시면서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던 곳이며, 중보를 부탁했던 제자들은 피곤에 지쳐 잠에 떨어졌고, 다시금 예수님께서 이들을 깨워 중보를 부탁했던 장소이다.
 감람산을 다 내려와서 기드론 골짜기에 이르렀다, 기드론 골짜기는 겟세마네 동산과 감람산이 있는 산맥과 예루살렘 성읍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오랫동안 예루살렘 동쪽 경계선의 역할을 하였다. 유다의 왕들이 우상과 이교적 기구들을 소각시킬 때 이곳 기드론 골짜기를 사용했었다(왕상 15;13).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의 기념비가 이곳에 세워졌으며(삼하 18;18), 다윗 왕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황급히 버선발로 뛰쳐나와 이 기드론 골짜기를 건넜다(삼하 15;13).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을 자주 오르내리셨을 뿐 아니라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살고 있는 베다니(Bethany)를 드나드셨는데, 그때마다 바로 이곳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가셨다. 또한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인하여 최후의 밤을 맞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요18;1)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으며 거기서 아버지의 참 뜻을 묻는 기도를 간절히 드렸다.
 시온산을 향하여 가서 마가의 다락방, 다윗의 무덤, 베드로통곡 교회, 힌놈 골짜기를 보았다. 시온산은 “시온”이라는 말이 구약성서에 시적인 표현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거룩한 산”, “여호와의 산” 등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신약성서에도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천사와(히12;22)”에서 보듯 “하나님의 도성”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온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적으로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사10;24, 계14;1).
 마가의 다락방은 시온산 언덕에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그들의 발을 손수 씻어주시던 곳이며(눅 22;12-13, 요 13;4-15), 오순절 날 제자들이 120명의 성도들과 함께 모야 기도하다가 성령이 임했던 곳이고, 최초의 교회가 시작된 곳으로 보고 있다. 지붕에다 만든 2층 방으로 당대의 일반적인 건축양식이었다. 통상적인 생활공간보다 시원하기 때문에 여름에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거의 100-12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아치형 돔 형태의 건물로 널찍한 공간이다.
 다윗 왕의 가 무덤은 마가의 다락방 건물 아래층에 있다.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 다윗성에 장사되었다고 했다(왕상2;10). 다윗의 무덤은 유대인들이 관리하고 있어서 남자는 머리에 카파(작은 모자)를 써야 하고, 여자는 어깨나 하체가 많이 노출되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하며, 남자, 여자를 따로 따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다윗 왕의 가 무덤이라 함은 말 그대로 가짜 무덤을 말한다, 이 무덤은 기념 무덤으로 실제 다윗 왕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베드로통곡 교회 : 시온산의 남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교회인데, 성전산과 감람산이 잘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기도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 교회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그 날 밤,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 끌려와서 심문을 받게 되는데, 뒤따라온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게 된다(마26;69-74). 역시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 26장 75절에서는 베드로의 부인은 이미 예수님에 의해 예언이 된 내용이었는데, 베드로가 3번 부인하고 난 후 예수님께서 “네가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 세워진 현재의 교회를 베드로통곡 교회라고 부르고 있다. 몰론 이곳은 가야바의 집터로 알려져 있는 장소이며, 교회 내부엔 가야바의 법정 자리가 일부 남아 있고, 지하에는 예수님 시대에 만들어진 물 저장소와 죄수들을 감금한 후 매질을 가했던 동굴감옥도 그대로 발굴되어 있다. 동굴 천정에는 범정으로 통하는 큰 구멍이 뚫려 있는데, 죄수를 심문할 때 묶어서 끌어올리고 내릴 때 사용한 구멍이라고 한다. 이 교회의 맨 꼭대기에는 닭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돔형 지붕 꼭대기에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이 교회를 닭울음 교회라 하기도 한다. 교회 내 천정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내부 색깔이 무척 아름답고 초대 교황이었던 베드로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통곡의 벽(The Wailing Wall)이다. 이것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성전의 서벽 쪽을 일컫는다. 높이 16 m의 이 성벽은 헤롯대왕 때 건축이 시작되어 60여년이 걸려 완성되었다. AD 70년 로마의 침공 시 대부분 무너졌으며 일부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유대인들은 일 년에 단 한 번 성전파괴 기념일에 이곳을 방문할 수 있게 허용되었는데, 민족의 고난과 성전의 파괴를 슬퍼하며 통곡하였기 때문에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곳은 유대인 최고의 기도처로써 많은 유대인들이 모이는 곳이며, 유대인들이 13세가 되면 성년식(Bar Mitzbah)이 이곳에서 행해지기도 한다. 이 통곡의 벽 기도처는 여느 회당이나 마찬가지로 남녀가 칸막이로 나누어진 구역에서 따로 기도하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 순례단도 이 통곡의 벽에서 각자 기도를 하였고 기도 제목을 돌 벽 틈에 끼워 놓고 오기도 했다. 이 통곡의 벽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통곡의 벽 뒤 언덕 위에 커다란 황금빛 돔으로 지어진 황금사원을 보게 되었는데, 우리 일행이 방문은 못했으나 그 황금사원 내부 중심에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한 장소라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곳이 성전 산이고, 구약의 모리아 산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예수님 당시 화려하고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는데, 이슬람의 오마르 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고 지금과 같이 황금사원이라고 불리는 이슬람 모스크가 세워져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을 따라 순례하는 감동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 길은 슬픔의 길 또는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며,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골고다까지 걸어가신 길 전역을 가리킨다. 이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과 관련된 당시의 행적을 따라 제 1 지점부터 제 14 지점까지 기념하는 포인트들이 정해져 있다. 이 십자가의 길은 1294년 리칼두스 신부에 의해 대략 위치가 정해졌다고 하며, 1540년경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지금의 코스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 십자가의 길의 각 지점은 다음과 같다.
 제 1 지점은 빌라도 법정을 말하는데, 예루살렘 동편의 사자문인 스데반 문을 통해서 들어가 약 200 m 쯤 완만한 언덕을 올라가면 아랍초등학교가 있는데 바로 여기서 예수님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던 것이다.
 제 2 지점은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곳인데, 빌라도의 병정들로부터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쓰시며, 온갖 조롱을 당한 후에 십자가를 지신 곳이다. 제 1 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현재 채찍질 교회와 선고 교회가 기념교회로 세워져 있다.
 제 3 지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힘에 붙여 처음으로 넘어진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는 1856년에 세워진 폴란드 가톨릭에서 세운 조그만 기념교회가 있다.
 제 4 지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모친 마리아를 만났다고 하는 장소이다. 이 지점에는 좁은 문 위에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가 만나는 모습의 조각이 새겨져 있고, 이곳에 알메니아 교회가 세워져 있다.
 제 5 지점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진 장소이다. 구레네는 지금의 리비아를 말한다. 여기서는 골고다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길이 시작되고, 이곳에 프란체스코 교회가 세워져 있다.
 제 6 지점은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 드렸다는 장소로 전해지는 곳이다. 이 베로니카라는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 병이 나은 여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도 역시 가톨릭 소속의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제 7 지점은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가시다가 두 번째로 쓰러진 곳이다. 여기도 가톨릭 소속의 교회가 세워져 있고, 제 7 지점의 표시가 부착되어 있다.
 제 8 지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슬피 울며 따라오던 여인을 바라보시고 말씀하신 장소인데,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하시며 종말에 대한 경고를 하셨다는 곳이다. 희랍정교회의 수도원이 있다.
 제 9 지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세 번째로 넘어지신 곳이다. 제 8 지점에서 직선거리로는 40-50 m 정도 떨어진 지점인데, 지금은 아랍인들의 가계, 시장으로 막혀서 시장 길을 따라 많이 돌아가야 비로소 제 9 지점에 다다를 수 있다. 거의 골고다 언덕의 정상에 가까이 있고 성묘 교회로 들어가는 문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제 10 지점부터 제 14 지점은 골고다 언덕에 세워져 있는 성묘 교회 내에 모두 있는데, 10, 11, 12, 13지점은 골고다 언덕 정상에 있고, 제 14 지점은 성묘 교회의 중심에 위치한다. 성묘 교회는 예수님무덤 교회라고도 한다.
 성묘 교회는 고대 예루살렘의 교회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매장되시고 부활하신 지역 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기독교의 가장 거룩하고 위대한 성지이다. 골고다 언덕 전체가 성묘 교회로 덮여 있다고 보면 된다. 골고다 언덕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된 예루살렘 교외의 언덕이다. 라틴어로 칼바리(Calvary, 갈보리)는 해골을 뜻한다. 이곳은 예전부터 공개 처형장이었는데, ‘해골’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언덕의 지형이 두개골과 비슷하기 때문이라 하고, 근처에 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 성묘 교회는 세워진 이래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게 되어서 주후 614년경에는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십자군 시대인 1149년에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전히 재건되었다고 한다. 현재 성묘 교회는 여섯 교파가 관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리스정교회, 로마가톨릭, 알메니아 교회, 시리아 교회, 콥틱 교회, 에디오피아 교회가 관리를 공동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제 10 지점은 성묘 교회의 조그만 제단인데,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기 위해 예수님의 옷을 벗긴 장소라고 한다. 성묘 교회 내부에 들어가서 바로 왼쪽에 있는 계단을 따라 2층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2층에 도착하는 지점이다.
 제 11 지점은 골고다 언덕 남쪽의 안쪽이 되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소가 된다. 성묘 교회 내부에 있는 이 장소는 제단의 벽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눕혀져 있는 큰 그림이 있는데 이를 보는 순례인들의 마음에 큰 슬픔과 또 그로 인해 구속의 역사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이 그림 속에는 예수님을 못 박는 로마 병사와 마리아가 슬피 우는 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다.
 제 12 지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장소이다. 이곳에도 역시 제단이 있는데 제단의 뒷부분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있는 모습이 조형물로 부착되어 있다. 이곳 역시 찾는 순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장소 중의 하나이다. 이 제단 옆에는 예수님 당시 운명하실 때 갈라졌다는 바위를 볼 수 있다.
 제 13 지점은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을 땅에 내린 장소이다. 이곳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려 석회암 판에 눕히고 몰약과 향을 섞은 것과 세마포로 장례를 준비한 곳이다.
 제 14 지점은 십자가의 길의 마지막으로 우리 기독교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곳으로, 우리 주님이 묻히셨고, 사흘 후에 부활하신 곳이다. 예수님의 기념 묘소가 되는데 성묘 교회 내에 다시 작은 건물로 성묘 교회 내 중앙에 위치한다.
이 예수님의 기념 묘는 돌로 만들어진 높이 약 6 m, 길이 약 8 m의 건물이다. 원래의 예수님 무덤은 동굴 무덤이었는데 그 동굴 무덤은 찾아볼 수가 없고 대신 그 자리에 이 기념 묘가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성지순례자들이 이 성묘 교회를 순례하게 되면 정말 많은 감동과 기쁨, 그리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물론 각자 각자가 받은 은혜와 감동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은 주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가셨고 그로 인해 구원의 기쁨과 감동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10일차 예루살렘 성지순례 일정은 십자가의 길 제 14 지점의 예수님무덤 교회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돌아가는 길은 올라갈 때와는 다른 길을 택했는데, 피로를 풀 겸, 휴식을 갖기 위해 노상 카페에 앉아 순례 안내를 맡은 권중칠장로의 대접으로, 석류와 오렌지를 직접 짠 쥬스를 맛있게 먹었다.
 벅찬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같은 호텔인 Manber Square Hotel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호텔 회의실에서 임영태목사의 인도와 말씀으로, 권중칠장로의 기도로 저녁예배를 드리고, 동산교회 순례단이 남아서 성지순례에 대한 각자의 느낌과 소감을 간증하는 시간을 갖고 휴식과 취침에 들어갔다.

11) 순례 11일차 5월 2일(목)
 호텔조식 후 일찍이 텔아비브 국제공항으로 이동하여 출국수속을 마치고 아침 9시 50분에 출발하여 12시 5분(2시간 20분 비행)에 터키 이스탄불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터키 입국수속과 현지 안내자 미팅을 하였다. 순례 11일차는 정오를 조금 지나서 전용버스를 타고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현지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스탄불 시내를 가로 질러 불루모스크라는 회교 사원을 방문하였다.
 이 불루모스크는 술탄 마호멧 사원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오스만 제국의 마호멧 1세가 소피아 성당을 모방하여 1616년에 지은 이슬람 사원이다. 보통의 모스크 사원은 4개의 첨탑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이 불루모스크는 6개의 첨탑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풍의 청색 타일로 장식되어 “불루모스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이슬람 사원의 건축미를 느낄 수 있는 웅장한 사원이었다. 이곳에서는 오스만 황제들의 중요한 의전을 집행했다고 하는데, 현재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아 줄을 서야 했고 입장 시에는 모자와 신발을 벗어야 했다.
 다음 방문한 곳은 불루모스크에서 가까운 성소피아 성당이었다. 소피아는 “거룩한 지혜”라는 뜻으로, 성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시대 건축 예술의 백미라 일컬어지는데, 주후 537년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 세워졌으며, 1453년 5월까지 약 900여 년 동안 비잔틴 제국 당시 기독교 교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오스만투르크가 점령한 1453년 6월부터 약 500여 년 동안에는 회교 사원으로 사용되다가, 1835년 이후 현재까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소피아 성당은 인류가 남긴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한다. 모자이크를 만드는 데만 9톤의 금과 만 여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 성당의 높이가 약 55 m에 달하며, 지름이 약 30 m에 이르는 둥근 돔으로 지붕이 만들어져 있고 벽면에는 아름다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성소피아 성당은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바뀌는 비운의 역사를 겪게 된다. 지붕 위의 십자가는 이슬람의 초승달로 바뀌었고 메카를 향해 기도할 수 있도록 내부를 바꾸고 기독교 성화 위에 회칠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사방에 이슬람을 상징하는 첨탑을 지었다. 지금은 이 성화를 복원하기 위해 60년 이상 작업을 해 오고 있어서 일부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벽화 앞에서 우리들은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다음의 행선지는 톱 카프 궁전이었다. 이 궁전은 보스포루스 해협의 높고 평평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1465년부터 1853년까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이 살던 곳으로 이스탄불에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예전에 대포가 설치되어 있어서 “토프카프”란 이름이 붙었다. “토프”는 대포를 “카프”는 문을 뜻한다. 궁전에는 세 개의 문과 네 개의 중정(中庭)이 있다. 제 1 중정에는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아누스 1세가 지은 하기아이레네 성당이 있고, 제 3 중정엔 남자들의 출입이 금지된 화려한 장식의 하렘이 자리하고 있다. 이 콥 카프 궁전의 거의 모든 건물이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뀌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이 박물관에 소장된 수많은 보물과 귀중품이 진열된 것을 보고 희귀하고 값진 것에 놀라움도 컸지만, 인류 역사가 전쟁으로 점철되어 죽이고 뺏고 약탈하며 이룬 전리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소 숙연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이 박물관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그렇게 크지 않은 모세의 지팡이와 다윗의 검(칼)이었다.
 성소피아와 불루모스크 중간에 위치하는 히포 드럼을 다음으로 방문하였다. 이곳은 원래 로마 시대 검투경기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며. 4세기 이후에는 마차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오는 곳인데, 지금은 광장으로 바뀌어 있다. 이 넓은 광장에는 비잔틴 제국의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이집트 룩소에서 가져다 놓은 오벨리스크 첨탑이 있었다. 고대에 어떻게 그렇게 큰 조형물을 옮겨놓을 수 있었을까하는 의아하면서도 놀랍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스탄불(터키어로 이슬람으로 가득한 도시) 도시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운데 두고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쳐 있는 도시이다. 동로마 제국 당시에는 이름이 콘스탄티노플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를 멸망시킨 후 수도로 계속 남아 있다가 이스탄불로 개칭되었다(지금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이다). 인구는 약 1,380만 명 정도이고 유네스코의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시장으로 알려진 그랜드 바자르를 방문하였다. 비잔틴 시대부터 현재 그랜드 바자르가 있는 장소는 무역의 중심지였다고 하며, 터키의 민족적 향기가 감도는 이스탄불 최대의 쇼핑 천국으로 세계 각국의 물건들이 거의 다 있다고 한다. 4,000여개 이상의 상점과 67개의 골목길, 출입구만도 20여개인 이 시장은 전문 품목별로 나누어져 있다. 그랜드 바자르 시장을 구경하고 오후 늦은 시간이라 이스탄불 시내에 있는 3층 건물의 식당에서 터키 현지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1층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들렸으나 별로 구매할 것은 없었다.
 해가 질 무렵 이번 성지순례의 마지막 코스로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아름다운 이스탄불 야경을 마음껏 즐겼다.
성지순례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이스탄불 국제공항으로 이동하여 현지 시간으로 5월 3일 새벽 0시 45분 TK090편으로 이스탄불 공항을 출발하여 약 11시간 후인 5월 3일 오후 5시경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대기하고 있던 전용버스를 타고 대구로 귀환 도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고,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야 대구동산교회에 도착하였다. 이로써 대구동산교회 창립 60주년 기념 성지순례 4개국, 12일 동안의 전 일정을 하나님의 지키심과 인도하심에 따라 은혜 가운데 마치게 되었다.

7. 성지순례 마침의 글
 성지순례는 어느 다른 해외여행과는 분명히 다른 그야말로 순례의 길이었습니다. 12일이라는 제한된 기간에 많은 성지를 방문하도록 짜여진 일정 때문에 매일 강행군의 연속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 일정을 하나님께서 선한 인도하심으로, 노약자를 포함한 27명의 순례단이 한 사람도 낙오함 없이 전 일정을 무사히 감당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순례기를 기록으로 남기게 된 동기는, 우리가 짧은 기간 동안 그 많은 성지를 방문하여 보고 듣고 감동으로 느꼈던 것들이 세월이 흘러가면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녀오신 분들에게는 기억을 되살리는데 도움이 되고, 앞으로 성지순례를 가실 분들에게는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지를 다녀 온 필자의 개인적 소감은 기독교인들에게 성지순례는 ‘그저 다녀오면 좋겠지’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데 성지순례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도움이 되기에 필수적으로 꼭 다녀와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았으면 가능하지도, 아니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스라엘 출애굽의 현장을 목격하였고, 주님과 그 제자들이 활동하셨던 그 장소들을 우리도 따라 밟고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에 더욱 확신을 얻게 되고, 뜨거운 믿음으로 결단하는 체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약 3주 정도 지난 후에 기억을 되살리며 기록한 것이라 이 순례기가 다소 미흡하고 착오가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에 널리 양해를 구합니다.  

2013년 6월 17일 대구동산교회 원로장로 이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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